2018. 12. 이달의 호국인물

민종식(閔宗植)의병장

(1861. 3 ~ 1917. 6. 26)

민종식 의병장은 1861년(철종 12)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882년(고종 19)에 과거에 급제한 후 이조참판에 이르 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치욕적인 사건으로 여겨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구국운동에 매진했다.

1905년 을사 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3월부터 처남 이용규 등과 함께 의병을 계획하여 항일운동 전면에 나섰다.

선생은 격문과 각국 공사관에 보내는 청원문을 작성하고 1906년 6월 의병을 일으켰는데, 홍주 근방 합천에서의

첫 번째 전투는 그 성과가 미미했으나 충청도 홍산에서최익현, 임병찬 등과 연합하여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이후 서천, 비인, 판교를 거쳐 남포에 이르렀을 때의 군세는 1만여 명으로, 을사의병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이어 보령, 청양 등 충청남도 서부 일대를 점령하고 서부의 중심지인 홍주를 점거하면서 을사의병의

3대 전투의병(신돌석 진영, 정용기ㆍ정환직 진영)으로 그 기세를 드높였다.

당시 민종식 의병장이 이끌던 홍주 의병부대는 서울과의 교통로 때문에 일제에게는 큰 위협거리였다.

이에 일제는 급히 토벌대를 파견, 5월 31일 홍주성에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홍주

의병부대는 부족한 여력에도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83명이 전사하고, 145명이 일제에게 생포되는 등 크게 패했다.

선생은 몸을 피해 청양, 온양, 공주 등지에서 저항하면서 수차례 일제의 추적에서 벗어났으나

11월 공주에서 체포되어 1907년 7월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법부대신 이하영의 주선으로 사형을 면하고 순종 즉위기념 특사 등으로 풀려났지만

구금 중 얻은 후유증으로 1917년 사망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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